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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네 사진관/추억만들기

2005년 여름 휴가

 

1일차 : 8월 14일




★ 8월 14일 일요일 - 첫날 ★

본격적인 휴가의 첫날. 전날 다섯 시간 동안 운전을 하고 온 터라 피곤하기는 하였지만 짧은 휴가 일정을 생각하니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태윤이 할아버지, 할머니도 쉬시는 날이어서 온 가족이 함께 남해 나들이를 떠났다. 1시간 30분 정도 걸려 남해 외갓집에 도착하였다. 옛날보다 많이 초라해진 집... 가슴 한 켠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어릴 적 기억이 떠올라서 찍어 본 방...
문 닫힌 방의 주인은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외삼촌이었다.
겨울이면 옆에 보이는 조그만 부엌에서는 늘 아궁이에 빨간 불이 타올랐었고, 그 속에선 고구마가 익고 있었다.
내가 커가면서, 공부를 핑계로 외할머니댁에 발길을 끊기 시작하면서부터 저 방문을 열어본 기억이 없다.
그리고, 저 방에서 늘 잠자던 우리 외삼촌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로, 나는 저 방문을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가지지 못했다. 이 날도 난 저 방 앞에서 굳게 닫힌 방문을 찍었다. 주인 없는 방문 앞을 마늘이 지키고 있었다.



외할머니께 얼마 되지 않은 용돈을 무슨 죄값인마냥 드리고...집을 나섰다.
부산 외삼촌과 숙모님, 그리고 성민이 형의 아들 녀석과 함께 상주 해수욕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연휴라서 그런지 여름 휴가의 끝자락인데도 상주 해수욕장으로 통하는 국도엔 차들이 꽉 들어찼다.
어렵게 어렵게 도착하여, 바닷가 횟집에서 점심을 한 후 태윤이를 데리고 바다로 갔다.
이날은 태윤이가 바닷물에 처음으로 들어가 본 날인데..아쉽게 내게 남아있는 사진은 없다.
하지만 나의 기억 속엔 태윤이가 자동차 튜브를 타고 넘실대던 파도 위에서 깔깔거리고 웃던 그 표정이 영원히 남을 것이다.

바다에서 나와 상주 해수욕장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탄다.
유람선 선실에서 웃고 있는 태윤이의 모습이 예쁘다.



예전엔 "윤이가 아빠를 많이 닮았다"라는 말을 듣기 좋아했는데, 지금은 엄마를 닮았다고 하는 말이 더 듣기 좋다.
아빠보다 엄마가 더 예쁘기 때문이다




바다를 보고 있는 엄마와 아들...
그리고 그들이 보고 있는 여러 개의 바다들.
















날씨가 좀더 좋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날이었다.
하늘이 구름으로 잔뜩 뒤덮여 성에 차지 않는다.
난 뷰파인더 한가득히 밀려오는 푸른색과 초록색의 물결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













멸치잡이 배라고 했다. 갈매기 한 마리가 따르고 있다.








유람선 위에서 가족들의 모습을 담아보고 싶었다.
태윤이가 협조를 잘 하지 않는다.
녀석... 집에서 놀 때는 "배, 배.." 하면서 좋아하더니 직접 타보니 조금은 무서워한다.
어머니가 챙겨주신 모자를 쓰고 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뱃전에서 찍은 상주 해수욕장...
한 여름 우리의 바다는 어디건 목욕탕을 연상케 한다.
그래도 좋다.












바나나 보트...
저걸 언제 한 번 타 볼 수 있으려나..




2일차 : 8월 15일




태윤이와 엄마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가게 장사에 매달리는 날이다.
염치 불구하고, 태윤이를 데리고 나선 날.
그 첫번째 코스는 진양호 동물원이다.
동물원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있는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엄마와 태윤이...
잠시 후 아빠가 태윤이 아이스크림을 뺏어 먹으려다 그만 땅에 떨어뜨리고 만다.
이럴 땐 누가 항상 내 옆에서 초성능 캠코더를 들고 다니면서 내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해 줬으면 하는 희한한 공상을 해 보곤 한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건 항상 타자이고, 세상이다.
내 기억 속에 내 모습은 그 실체가 없다



뿔달린 염소하고 태윤이가 신경전을 펼친다.
'염소'라는 말과 '흑염소'라는 말의 뉘앙스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일까?
태윤이를 겁준 이 나쁜 흑염소...^^;



별로 관심을 끄는 동물이 없어 오리 한 마리를 찍어 보았다.
그래도 동물원에 왔었다~~~라는 기록은 남겨 두어야 할 것 같아서...

엄마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여름철 동물원에 오면 "온갖 냄새만 가지고 가는 거 같아, 여보..."

그 땐 별 대꾸를 안 했는데, 지금에서야 우리 마누라님한테 한 마디 남겨야 할 것 같다.
...냄새 말고 이렇게 추억도 가져 왔으니 됐지?^^




태윤이는 아이스크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주면 먹고 안 주면 안 먹고.
그래로 맛있게 먹는 포즈까지 취해준다.
효자다. 아빠를 위해 포즈까지....다 키웠다







동물원을 나와서 남강댐을 건너 하동으로 갔다.
이 날은 별 계획없이 무작정 길을 나선 터라 행선지도 즉흥적으로 정해졌다.
하동 평사리 공원이다. 공원이라고 하지만 그냥 강가에 가깝다.
물이 얕아 애기들하고 같이 물놀이하기에 제격인 곳이다.




하늘빛이 좋아 태윤엄마와 태윤이를 앞에 세워 보았다.
태윤이에 엄마 얼굴이 자꾸 가렸지만 엄마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 그냥 대충 찍었다



섬진강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엄마와 태윤이...
이번 휴가 동안 찍은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때론 물에 손을 담가 보기도 하고...





물 속에 있는 뭔가를 신기해하기도 하고...





둘 만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물놀이에 옷은 거추장스러운 물건일 뿐이다.
벗고 놀기로 한다.




태윤이도 이제 네 살이 되어 기저귀를 벗은 지도 오래 되었으니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는 남겨두었다.
팬티를 입고 있는 환하게 웃고 있는 태윤이의 모습...
아빠가 선정한 두 번째 마음에 드는 사진.





엄마의 독사진도 찰칵..





주희는 엄마가 되었지만 아직 주희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물놀이에 신이 난 태윤이...









엄마가 진땀을 뺀 "흐르는 강물위에 떠 있는 태윤이 바지 줍기 놀이"의 시작이다.





엄마가 잡았다.





태윤이가 다시 던진다.





태윤이가 바지를 잡으러 간다.





이 놀이를 하는 동안 엄마는 태윤이가 물에 빠질까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다.
사진 속에도 잘 나타나 있다. 저 입을 보라~~~














진주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음식점에서 찍은 섬진강의 한가로운 풍경
음식이 맛있었다. 재첩국과 재첩녹차수제비, 재첩파전.
음식을 카메라로 찍는 사람들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음식 잡지 등의 기자와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그게 아니면 카메라로 장난하기 좋아하는 미련한 사람...

내가 미련했다. 지금 내 심정은 찍어서라도 그 맛을 보여주고 싶다.
아마 이런 마음에서들 밥에다 셔터를 뿌리는 거겠지?

이곳에서 오랫동안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옆에 묶여 있는 큰 개가 하도 짖어대길래
도둑으로 오인받을까봐 후다닥 카메라 가방을 챙기고 돌아섰다.



3일차 : 8월 16일




태윤이 막내 삼촌과 함양 농월정과 용추 계곡을 들렀다.
농월정에서는 태윤이가 예쁘다고 웬 할아버지께서 머릿고기를 잔뜩 주셨다.
농월정은 몇해 전에 관광객들의 실화로 불타고 없었다.
농월정이 없는 계곡은 더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동생과 나..모두 다시는 올 일이 없겠구나~라는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발길을 돌려 용추계곡으로 향했다.
용추계곡에서 잠시 시원함에 빠져 들었다.



막내 삼촌과 함께 찰칵...
이 사진이 내 카메라 메모리카드 속에 들어 있는 마지막 사진이다.

2005년의 여름은 이렇게 끝이 나고 있다.